도시와 새 도시는 연속됨 가운데 분명한 단절을 갖고 있습니다.

 

사마리아 우물가의 여인은 외로운 도시인 입니다.

그녀는 마음의 빈 잔을 채우려고 여러 남자를 남편으로 삼았으나

끝내 그 갈증을 해결하지 못한 사치스럽고 음란한 여인입니다.

도시에서 버림받은 그녀는 광야에서 주 예수를 만납니다.

만나고 나서야 비로소 영혼의 빈 잔에 생수를 채워 넘쳐남을 경험합니다.

그리고 자신을 정죄하는 도시에 달려가 그 분 예수를 증거합니다:

“내가 한 일을 모두 알아맞히신 분이 계십니다.

그분이 그리스도가 아닐까요? (4:29)

 

주 예수님은 버림받은 도시인을 광야에서 만나 구원을 베푸십니다.

그리고 자신의 여자가 된 그 도시인을 신부단장하여 어린양의

혼인잔치에로 이끄십니다. 새 도시의 주인공으로 초대하신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도시와 새 도시의 연속됨을 봅니다. 그러나 동시에,

오늘 본문 말씀은 그 연속됨 가운데 분명한 단절이 있음을 증거합니다.

즉 백마타고 오시는 피로 물든 옷을 입으신 주 예수로 인해,

이 땅을 망치는 두 짐승은 불바다로 던져집니다.

그 짐승들의 배후세력 마귀도, 그리고 죄와 죽음도 불바다로 던져집니다.

이 단절됨을 통해, 이 땅과 하늘은 새로운 땅과 하늘이 됩니다.

도시는 사라지고 새 도시가 이 신천신지에 펼쳐지는 것입니다.

 

계시록은 단절을 가져오는 이 최후의 전쟁을 네 번 반복하여 증거합니다.

어린 양이 여섯째 봉인을 뗄 때에 일어나는 이 땅의 최후 모습 (6:12-17)

천사가 대접을 유프라테스 강에 쏟으며 일어나는 아마겟돈 전쟁 (16:12-21)

천년이 끝나면서 사탄이 일으키는 최후 전쟁의 모습 (20:7-15)

그리고 오늘 본문에 나오는 주 예수님으로 인한 다스려지는 그 전쟁

이 네 번의 묘사는 다 동일한 것에 대해 네 번 반복하여 표현한 것입니다.

그것은 곧 도시와 새 도시 사이에는 악을 완전히 제거하기 위한

분명한 단절이 있다는 것입니다. 주 예수님의 다시오심을 통해…

 

단절이 있기에, 새 도시에는 누구나 다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주 예수를 믿고 인내하며 끝까지 예수를 따른 자들만이 들어갑니다.

연속이 있기에, 새 도시에는 예수를 믿고 인내하며 끝까지 따른 자들은

누구나 다 광야의 상복을 벗고 깨끗한 모시 옷을 입고 신천신지의

새 도시에 들어갑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영원히 존재합니다. 영원무궁토록

예수를 믿고 인내하며 따르는 당신은 새 도시에서 영원히 존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