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사탄에게 뒷꿈치를 물린 자들이 영혼의 아픔 가운데

먹을 것, 입을 것, 거할 것을 찾아 모여든 삶의 터전과 방식입니다.

그곳엔 거주할 공간과 장소를 확보함 속에서 엮어지는

가진 자, 잃은 자, 그리고 꿈꾸는 자들의 사연들로 가득합니다.

노란버스로 자녀들을 실어나르면, 우리는 안심하고 그들의 미래를 기대합니다.

녹색차로 집집마다의 쓰레기를 치워주는 것을, 도시인들은 당연히 여깁니다.

하얀앰블런스로 때론 죽을 사람도 살려주며, 우리는 삯의 댓가로 여깁니다.

전기로 더운 것도 추운 것도 해결해 주는 살기 편한 곳, 그곳이 곧 도시입니다.

하지만 이 도시에는 그 편리함을 만들고 유지하기 위해

훔치고 죽이고 파괴하는 도둑들로 가득할 뿐만 아니라,

톱니바귀처럼 돌아가는 그 도시에서 떨어져 나가지 않으려고

때론 아픈 몸을 이끌고 하루 일당을 벌러 나가야만 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아니, 한 걸음 더 나아가 사탄에게 영혼을 넘겨주어서라도

살아남고 풍요해 질 수 있다면, 뒷꿈치를 물린 아픔과 사연속에

그러할 수도 있는 곳, 바로 그러한 삶의 방식과 터전이 곧 도시입니다.

 

광야

그 도시의 삶이 부러진 자들이 모여든 또 다른 삶의 터전과 방식입니다.

압제를 받는 자, 빚에 시달리는 자, 원통하고 억울한 일을 당한 자들이

척박한 땅으로 내몰린 그 곳,

그 곳에서 비로소 남이 듣지 못하고 남이 알지 못하는

신세계에 대한 꿈과 소망이 영글기 시작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 광야에서 비로소 생명의 근원자의 말씀을 보고 듣기 때문입니다.

생명의 말씀으로 인해 거듭나고, 사탄에게 뒷꿈치를 물린 영혼의 아픔을

치유받습니다. 그 광야에 우리 공동체도 목장도 존재합니다.

 

새 도시

큰 창녀와도 같은 도시는 심판받습니다.

왜냐하면 그 배후에는 사탄을 대신하여 통치하는 빨간 짐승이

도사리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로 인해 그 도시는

성도들과 예수의 증인들을 죽이고 그 피에 취해 있기 때문입니다.

도시의 죄가 심판 받아, 그 도시에 죽음이 완전히 제거된 것이

곧 새 도시 입니다. 사탄에게 뒷꿈치를 물린 우리의 사연은 씻겨지고,

사탄의 머리를 박살내신 주 예수의 사연이 우리의 힘과 소망되어,

하나님의 사연만이 가득한 곳이 바로 우리가 소망하는 새 도시 입니다.

죽음도 고통도 눈물도 없는 이 새 도시는, 우리 주 예수께서

다시 오실 때에, 은혜로 주어지는 우리의 신세계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