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의 교회는 항상 양극단으로 부터의 도전에 직면해 있습니다.

영적인 힘과 지혜를 이용하여 성도들을 미혹하는 니골라당과 그 아류인

발람과 이세벨의 간음과 탐욕의 세력으로 부터의 도전에 대한 바른 응전입니다.

반면에 정반대의 극단에 있는 또다른 세력의 도전에도 직면해 있습니다.

그것은 니골라당(nikao/정복하다+laos/백성들)과는 정반대의 양태를 보입니다.

라오디게아(laos/백성들+dike/옳음)라는 말처럼, 자신들의 옮음과 합리화를 따라

세상과 타협하여 미지근한 자리에서 물질적 부요를 추구하는 교회의 모습입니다.

 

Pax Romana: 당시의 시대적 배경을 한마디로 설명해 주는 단어입니다.

당시의 나라들과 민족들은 로마의 통치아래 놓여있었습니다.

즉 당시에는 황제숭배 가운데 666의 표를 받아야만,

로마의 평화아래 부를 추구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의 교회들 또한 이러한 배경아래 놓여있었기에, 서머나교회는

황제숭배와 666의 표를 거절함에서 오는 극심한 빈곤을 겪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반면에, 오늘 본문에 나오는 사데교회와 라오디게아교회는

자신들의 옮음에 근거하여 황제숭배와 타협(compromise)을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통하여 세상적인 평화와 부요함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황제숭배의 그늘아래서 하나님예배를 하였고,

666표를 품고 하나님과 돈을 겸하여 섬겼던 것입니다.

타협이란, 세상의 관점에서는 뱀처럼 지혜로와 보일지 모르나,

그러나 하나님 보시기에 타협이란 창녀짓에 불과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불의와 손잡는 야합(collusion)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사데교회와 라오디게아교회를 향하여,

너는 살아 있다는 이름은 있으나, 실상은 죽은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너는 풍족하여 부족한 것이 조금도 없다고 하지만,

실상 너는, 네가 비참하고 불쌍하고 가난하고 눈이 멀고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왕관을 받기위해, 황제숭배와 666의 표를 거절해야만 합니다.

이것이 곧 왕관을 받기위해 그 무게를 견디는 것입니다.

처음에 복음을 어떻게 받게 되었는지를 생각하고, 그 복음의 말씀에

복종해야 합니다. 그리고 세상을 등지고 하나님을 향해야 합니다.

라오디게아교회를 통해 이것을 좀더 구체적으로 살피면,

첫째, 황제숭배와 666의 표를 거절함에서 오는 시련과 고난 가운데,

다시금 정금처럼 빚어져야 합니다.

둘째, 돈과 하나님을 겸하여 섬기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아,

오직 그리스도 안에 머물러 공동체의 정체성을 회복해야 합니다.

셋째, 영적인 대각성 가운데 분별력을 회복하여, 시험에 들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이렇게 교회는 항상 양극단인 안팎의 도전에 직면해 있습니다.

왕관을 받기위해, 교회는 그 도전에 응전하여 무게를 감당해야 합니다.

영적인 힘과 지혜를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사용하여 세상부귀를 얻으려는

니골라당의 유혹을 이겨야 합니다.

동시에 세상과 타협하여 세상부귀안일함 가운데 영적으로 죽어버리는

라오디게아(자기옳음)의 유혹 또한 이겨내어 속사람의 생명으로 살아야 합니다.

이렇게 양극단의 세력의 도전을 이기면서 나아가고, 또한

이기려고 나아가는 자는 신천신지에서 왕관을 받게될 것입니다.

이것이 곧 왕관의 무게를 견디는 자의 삶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