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구원의 현장

여섯 경고의 나팔이 불려오고 여섯 심판의 대접이 쏟아지는 곳입니다.

이곳은 마치 하늘의 우뢰같은 소리가 울려퍼짐 가운데

복음의 흰 말이 뛰니,

덩달아 시기질시의 붉은 말이 뛰고 뒤따라 가난과 궁핍의 검은 말과

질병과 사망의 청황색 말이 뛰는 것과도 같습니다.

그렇게도 수 많은 경고와 심판의 재앙 가운데도,

우리에게 붙여준 영혼들은 회개하지 않습니다. 아니, 오히려

더욱 하나님을 모독하며 자신들의 고집을 따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직면한 영혼구원의 현장입니다.

 

이러한 영혼구원의 현장에서, 우리 주 예수님은

소돔처럼 타락한 세상의 죄인이 되어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이집트처럼 하나님의 자녀들을 노예삼아 부리는 세상에서,

우리를 대신하여 죄인이 되어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유프라테스강을 건너와 약속의 땅에 머문자들,

그들을 우리는 히브리인이라고 부릅니다. (히브리라는 말은

'이브리(עברי)'라는 말에서 왔고, 그것은 '강을 건너온 자'라는 뜻입니다.)

소돔과 이집트의 세상에서 불려나온 자들을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하고 부릅니다. 강을 건너오듯 세상을 건너 와 그리스도 안에

머물며 광야에서 상복을 입고 증거활동을 하는 자들입니다.

그런데 여섯째 나팔과 대접의 재앙을 통하여,

그 강, 유프라테스강의 악한 천사들이 놓임을 받아 공중에 권세를 잡은

세상 영들이 약속의 땅으로, 교회 안으로 밀물처럼 들어왔습니다.

유프라테스 강물이 말라 그 경계선이 허물어 졌습니다. 그리고

물질만능의 바알과 아세라가 약속의 땅과 교회 안에서도 주인이 됩니다.

 

이러한 영혼구원의 현장에서, 교회는 하늘의 능력으로 증거활동을 합니다.

그러나 교회는 또한 우리 주 예수님을 따라 소돔과 이집트의 세상권세에

의해 죽임과 조롱을 받습니다. 나팔과 대접의 재앙 속에,

세상은 더욱 기고만장하며, 교회는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뒤를 따릅니다.

 

그렇다면 붙여준 영혼들은 어떻게 됩니까? 하나님의 정의는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은 죽은 자 예수를 살리시며 자신의 의로움을 드러내십니다. 또한,

하나님은 예수를 따라 죽임당한 교회를 살리시며 자신의 영광을 나타내십니다.

붙여준 영혼들은 교회의 부활능력을 따라 비로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교회의 섬김과 증거활동, 순교와 그리고 부활의 능력을 통하여, 온갖

재앙속에서도 그토록 저항하며 그릇된 길을 가던 영혼들이 비로소 구원받습니다.

그러나 여섯 나팔과 여섯 대접의 재앙 속에서도 끝까지 저항하며

하나님을 모독하는 자들, 자신들을 위해서 섬기고 기도하여 주는 자들이 없던

7000, 즉 교회가 섬기지 않은 영혼들은 불바다로 갑니다.

이것이 곧 영혼구원의 현장이며 현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