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플랑크니조마이! 이 말에 올인합니다. 지금까지의, 앞으로의 우리의 모든 사역을 이 한 단어로 감쌀 수 있습니다.  이 단어에 깊이 깊이 닻을 내립니다. 이 말은 한 영혼을 향한 아버지의 마음을 가장 잘 표현해주고 있습니다. 또한 교회의 머리이신 주 예수님의 이 땅의 교회들을 향한 마음이 어떠하신지를 알 수 있는 실마리 입니다.

신약성경은 긍휼히 여긴다는 말을 할 때에, 일반적으로 엘레오스(eleos)를 사용합니다. 이것은 의지를 발동하여 의식적으로 불쌍히 여기며 살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감성을 동반하여 마음이 찢어지게 아파하며 긍휼히 여길때는, 엘레오스가 아닌 스플랑크니조마이를 사용합니다. 목자없는 양떼와도 같아 보였을 때 그리고 말씀을 사모하여 모인 무리가 먹을 것이 없어 굶어쓰러지기 직전인 것을 보시며, 우리 주 예수님은 엘레오스가 아닌 스플랑크니조마이의 상태에서 오병이어와 칠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탕자의 귀향을 맞이하는 아버지의 마음도 스플랑크니조마이 였습니다.

지금까지의 우리의 형편과 처지도 돌아오는 탕자와 별반 차이가 없었습니다. 또한 목자없는 양같아 세월을 이리저리 허비했고, 그리고 말씀을 사모하여 모인 우리들의 형편도 찢어지게 가난했습니다. 스플랑크니조마이! 이 은혜 없이는 하루도 살 수 없는 형편과 처지였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가운데 있는 무자비한 재판관으로 인해 오히려 영육이 더욱 꽁꽁 얼어붙는 경험도 종종 하였습니다. 우리 마음의 비정한 초자아, 그리고 세상의 잣대는 우리의 찢어지고 상한 형편과 처지를 냉혹하게 정죄하였고 그리고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배후의 악한 영들에게 짖눌리었던 연단의 기간이었습니다.

어둠은 물러가고 새 날은 밝아오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죄악에 포로되었던 종들을 풀어주시는 큰 은혜의 날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누가 이 날을 준비하며 앞당길 수 있겠습니까? 스플랑크니조마이, 가슴을 찢으며 애통하고 회개하는 자들입니다. 상한 심령으로 영혼을 품고 엎드리고 또 엎드리는 자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 반열에 세우셨습니다. 스플랑크니조마이, 여기에 우리의 시작점과 종착점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