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서를 보다가, 아니 예수님이 하신일? 하면서 레위기로 돌아갔다.
번제, 속건제, 를 읽다가 덜덜 떨렷다. 제단위에 태우기 위에 각이 떠있는 짐승이 나로 보이기
때문이다. 무서워서 떨던날 인생의 죄문제가 원터치로 끝난다. 그동안 영원의 밤을 통하여
인간의 죄가 임상실험 되어 졋다고 했지만, 간음,음난,탐욕,살인 이런것이 아니다.
인간의 죄중에서 증거없이 냄새만나도, 몰살시키는 반역죄임을 우리는 역사에서 본다.

몇 주가 지났는데도 가슴이 막히고, 아브라함에게 그런 죄를 혼자 감당하신다고 약속하신
말씀을 묵상해도 가시질 안는다.구약은 시청각 교육같으다.
레위기에 나오는 그 끔찍한 장면 앞에서 어찌 창조주와 피조물의 구별이 아니 서겠는가?
나오는 말은 딱 한마디," 아버지" 이다.

그런데, 왜 모세는 목이 터지게 아버지만 섬기고 사랑하는 말씀을 손에 매어 표로 삼고
이마에 붙여 기호로 삼고 집 문설주와 대문에도 써서 붙이라고 했을까?
인간의 적응력 때문일까?  나를 대신 하는 것이 아니고, 아니 내가 아니고 짐승이라고

여호와를 주인으로 모신 갈렙과 여호수아를 대장으로 한 싸음. 그것도 여호와를 의지 할때는
이기고, 아니면 지고함을 통하여 정복한 가나안 땅 그것을 기록한 말씀 다음에 나오는 말씀 은
서로 왕이 될려고 하는말씀이 이닌가

이 끈질긴 죄성으로 몸부림 치는 우리들에게 짐승이 아니고 우리와 같은 인간 으로 내려오셔서 제물이 되어 주셧다. 그래서 우리의 끈질기게 악함에도 불구하고, 왕의 자녀이기에
나를 인정하고, 용납하며,사랑하며,자랑한다. 이러한 우리와 아버지와의 사랑을 방해하는
악한 것들에게 외친다.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나가거라"하고 말이다.

나사렛 예수
제물로 각이 떠져서 태워질 나를 살리신 아버지의 능력이다.

말씀으로 우리를 창조하신 아버지는 우리를 책임지시는 일은 우리의 방식대로 선택하여
당하셧다. 그것은 미약한 우리이지만 아버지의 자녀이기에 우리의 솜털 하나까지 아끼며,
존중하시는 아버지의 사랑이 아닌가 하며 오늘도 그사랑은 나를 소생 시키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