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 교회에 밥솥을 나르다가 열쇄 꾸러미를 읽어버린 적이 있었다.
못 찾으면 귀찮고 시간 들고, 돈도 들고,....
열심히 오가던 길을 살피는 중 길에 열쇄는 보이지않고
하수물이 지나가는 꽤 커다란 직사각형의 쇄로만든 뚜껑 속으로 물이 쫄쫄 흘러가는 것을보는 순간,
아! 저기로떨어졋구나, 하는생각이 나면서 짜증이 났다.

그런데. 재미있었던것은 내 머리가 재빨리 돌아가기시작했다,
한 발자국만 옆으로 지나갔어도 괞찮았을텐데,,,,,,
열쇄를 손에 쥐지 않고 주머니에 넎었었으면 ......
집에서 조금 일찍 떠났었으면,,,,,,,,
오는 길에 차가 안 막혀섰으면 ,,,,,,,
내가 잘잊어버려서 열쇄는 항상 내 가방속에 넗는데,,,,,,

이렇게 어떤 사건의 결과에 대해 원인을 규명하는 버릇이 우리에게있다
그런데 우리의 마음 깊숙한 곳에서 나의 잘못이라는 생각이 많나보다.
우리 목장 잘나오다가 안나오는 지체들을 섬길 때 힘든 부분이 있는데. 이 이유. 저 이유 대보지만
내가 그 지체를 생각하며 볼 때면, 나의 부족함 때문에 아니 더 솔직한 표현으로 내가 잘못해서?
그래서 우리에게는 짐이 너무 많다.

내 남편을 생각해도 그렇다.
어떻게 일과 집만 알던 사람이, 아이들이라면 끔찍하던 사람이 그렇게 뛰러나갔다가 못 들어왔을까?  
그사람의 힘들게 성장한 환경에 대해 생각도 하지만, 내 머리속에서 나를 누르는 생각은
내가 세상을 너무 좋아해서 그걸 위해 너무 힘들게 일했나?
아니 혼자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을 그냥 나둘걸.......
아무런 대책도 얺이 (교회를 나갔던 것도 아닌데) 어디 혼자 나가 는것을 절대로 못보았으니까...
그래서 그사람이 stress가 너무 많았었나?
거기에 덧부쳐서 우리아이들 볼때면 그 자책감은 눈덩이 굴러 커지듯이 커진다.

그런데 신기하지않으가?
나의 생각속에 아버지는 어디에 계신가?
내가 온통 내 주변의 하나님이 돼어 모든 짐들을 다 지고 있지않은가?

이런 우리에게 우리를 만드신 분의 확실한 음성이 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오라."
오라 하신다. 우리의 짐들을 가져오라하시다. 세상의 이론으로도 옳치 않은가.
만드신 분이 책임을 지신다고 하지않는가?
그래서 다 고한다.
너무 좋다. 내가 별별 이야기를 다해도 들어주신다.
아버지! 나에대해 지적하는 지체도 싫고,
그리고 내모습보니까 그런부분이 있는 걸 보니 그것도 싫은데요...
그런데 아버지! 보면 ,그렇게 말하는 지체도 그런데요...

그렿게 칭얼칭얼 이야기하다가 갑자기 큰 바다 앞에, 큰 산 앞에 서진다.

너가 가진  생명이 무엇이냐?
너가 가신  생명이 무엇이냐?

이 물음 앞에 나타나신 우리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질기고 강한 아스팔트 뚫고 나오는 싹 처럼
내 안에서 나의 연약한 육신을 뚫고 나오는 강한 힘은
내것이 아니고 아버지의 것이다.
생명을 가지지못한 이웃으로 향하는 마음.
목장에 나오다가 안 나오는 구원 받지 못한 자매들에 대해 내 이야기가 아니고
아버지의 마음만 남는다.
우리남편에 대한 생각도 가느다란 좋은 추억으로만 주신다.
우리 아이들에 대한 것도 근심이 변하여 기도가 되게 하신다.
아버지 감사함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