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최근까지도 제게는 교만에 대한 부담이 있었습니다.  교만하지 않고 겸손해지려고 많이 노력하였지만,  어떨 때는 나의 겸손한 태도가 그 깊은 내면에는 오히려 교만에 뿌리를 둔 것은 아닌가 생각되기도 하여 힘이 들었습니다.  성경 구절을 읽거나 설교 말씀 중에 교만이나 겸손이라는 단어가 나오면 ‘아, 나의 약한 부분이지.  내가 잘 못하는 것이야.’ 하면서 부담스러워지곤 하였습니다.  어떨 때는 기도하면서 무작정 ‘주님, 제 속에 있는 교만함을 회개합니다.’ 하기도 하였습니다.

1)  한 3 주 전쯤에 한 목자님과 대화를 나누다가 그 분께서 우리는 이미 목욕한 사람이기에 더러운 것을 만지면 그저 바로 손만 씻으면 된다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전에도 몇 번 들었던 말씀인데 그 날은 그 말씀이 제게 들어왔습니다.  ‘내게 전에는 교만함의 죄성이 있었지만, 지금은 이미 예수님의 보혈로 내가 깨끗해졌기에 더이상 그 죄성과는 묶이여 있지 않는 것이다.  이제는 내가 혹 어떤 교만한 일을 저질렀으면 그때에 주님께 회개하면 되는 것이다.’  이렇게 깨닫고 나니, 참으로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주님께서 깨끗하다고 하시는데 그것을 감사히 받아 누리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2)  그 후 어디에선가 ‘주님께 회개하는 자가 겸손한 자다.’라는 글을 읽었습니다.  ‘그렇구나!  내 마음에 거리낌이 있을 때마다, 주님이 알려주실 때마다 회개하자.  그러면 주님께서 나를 겸손하다 하시겠구나.’  이렇게 행동지침이 있으니, 겸손에 다가가는 길이 훨씬 가깝게 느껴졌습니다.    

3)  지난 주에는 한 자매님을 방문할 일이 있었습니다.  그 자매님의 건강과 여러가지 사정이 좋지만은 않은 것같아서, 방문을 앞두고 계속 기도했습니다.  우리의 대화 속에서 주님이 일하실 수 있기를, 주님께서 나를 사용하셔서 그 자매님에게 용기와 희망을 줄 수 있기를, ….  그 자매님을 만나고 이런저런 얘기들을 나누었습니다.  부족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귀 기울였습니다.  대화 중 자매님께서  ‘줄리아 엄마는 당당하면서 참 겸손하다.’ 하는 말을 하였습니다.  그 말을 들을 당시에는 나의 focus가 그 자매님께 있었기에 그저 좋은 말이다 하고만 생각했습니다.  사나흘 지나서야 그 말이 얼마나 귀한 말인지를 깨달았습니다.  나는 그 자매님을  encourage하고자 기도하며 나아갔는데, 우리 주님은 그 자매님을 통해 저를 encourage 하여 주셨던 것입니다.   깨끗하다, 잘 하고 있다,  계속 잘 할수 있다, ….  ‘당당하고 겸손하다.’  참 아름다운 말입니다.  부족한 저도 주님을 따르며, 그 아름다운 모습에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노력할 힘을 주셨습니다.  

4)  엊그제는 아침에 눈을 떠서 지난 밤 꿈에 돌아가신 할머니의 뒷모습을 봤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꿈을 잘 기억하지도 못하고, 별로 생각하지도 않는 편인데, 그 날은 왜 그런 꿈을 꿨을까 생각이 들면서 순간적으로 ‘혹시 내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고는 짧은 시간이였지만 놀라거나 불안하기보다는 침착한 상태로 삶과 죽음과 주님과 나를 떠올렸습니다.  아침 식사를 준비하며 밝은 마음으로 남편에게 이 얘기를 하면서, 작년 여름에 아팠던 이후로 나는 나도 죽을 수 있다는 생각을 처음 하게 되었다는 말을 덧붙였습니다.  남편은 ‘죽음을 생각할 수 있는 것, 그게 바로 겸손이야.’ 하였습니다.  그때는 그게 무슨 겸손과 관련되는가 싶었는데, 이제는 이해가 됩니다. (상황을 깊이있게 인식하고 핵심을 잘 잡는 남편의 말에 제가 좀 더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덜렁대며 제가 놓치는 것을 주님은 남편을 통해서 알려주실 때가 자주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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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이삼주 동안 주님께서 교만과 회개와 겸손에 관하여 저를 이끌어 주신 것을 시간 순으로 적어 보았습니다.  개인적인 부끄러운 얘기도 섞여 있고 정리도 안됐지만, 세밀하신 주님의 인도와 제가 받은 기쁨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